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몽테크리스토 백작 (문단 편집) == 영향 == '''복수극이라는 장르를 시작하고 완성해 버린 작품.''' '복수'를 다루는 오늘날의 모든 작품들은 모두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영향력하에 있으며, 그 어떤 작품도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능가하지 못했다. 행복→좌절→부활→복수→구원으로 이어지는 [[권선징악]]의 기본적인 구조는 숱한 작품들에 영감을 제공했고, 약 2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만화]]나 [[영화]], [[드라마]], [[게임]]의 소스로도 끊임없이 사용되고 있다. 복수극의 스토리는 지나칠 정도로 이 소설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고, 소설 작법 중 복수의 플롯을 설명할 때는 예외 없이 이 작품이 나온다. 이 소설의 플롯이 얼마나 탄탄한지 알려주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특이한 점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복수를 긍정하고 쿨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 대부분의 복수극이 도덕적 문제를 언급하거나 하며 찝찝하게 끝나는 데 비해서,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상쾌할 정도로 시원시원하게 복수를 마무리한다. 물론 빌포르의 어린 아들이 죽음을 맞이하자 양심의 가책과 흔들림을 겪지만, '''그마저도 파리아 신부의 유품으로 남겨진 성경 구절을 읽으며 털어버린다'''. 복수극 끝에 "희망을 갖고 기다려라" 로 끝나는 편지를 본다면, 완벽한 결말로 독자들의 가슴을 울린다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19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일부 유럽 지역에서는 결투를 긍정하거나 개인적 복수를 당연시하는 풍조가 남아있을 정도였으니, 그런 게 소설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근대 법률 체제에서는 자력구제(自力救濟)가 절대 금지이지만, 중국만 해도 아직 자력구제에 대한 긍정적인 정서가 남아있을 정도이다. 살부지수(殺父之讐) 불구대천(不俱戴天)이란 말이라든지, 중국의 무협 소설이 왜 나왔는지 생각해보자. 사실 현대에 와서도, 만약 연쇄 살인범이나 지독한 흉악범에게 살해된 희생자의 가족이 경찰보다 빨리 그 범인을 찾아 살해하여 복수했다고 하면, “잘했다, “절대 경찰에 잡히지 말고 외국으로 도망가라, “저런 사람을 왜 법으로 처벌해야 하나? [[사법불신|법이 비현실적이다]]"라는 식으로 반응할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대다수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작품이 복수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빌포르의 아들인 [[에두아르 드 빌포르]]의 죽음은 백작에게 '더 이상 신은 내 편에 서 계시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내 복수가 정당하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는 엄청난 타격을 입혔고, 파리아의 성경 구절을 읽으며 이 타격을 극복하기는 하였으나 이 역시 양심의 가책과 흔들림을 '''털어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오류와 실수에 대한 답을 얻고 나름대로 자비심과 자신만의 선을 그은 것에 가깝다. 그 결과 마지막 원수인 [[당글라르]]는 복수는 했으나 완전히 파멸시키지는 않고 마지막 살길은 남겨주고 용서하게 된다. 즉 이 작품은 복수 자체는 긍정하지만 동시에 "복수가 긍정받기 위해서는(=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그 수단과 수준 역시 정당성을 지켜야 하며, 이를 벗어나면 상대의 죄에 대한 응보로서의 복수가 아니라 단지 상대가 자신에게 저지른 죄와 똑같은 잘못으로 되갚아 주는 것에 불과하다"[* 페르낭이나 당글라르는 둘째 치더라도 빌포르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백작이 저지른 짓은 죽이라고 지시만 안 했다뿐이지 명백한 [[살인교사]]다. 게다가 빌포르에게 복수하겠다고 애꿎은 가족들이 독살당하게 뒤에서 조장했으니 당글라르와 하나도 다를게 없는 셈.][* 어차피 복수를 하는 것인 만큼 법에 대해서 백작은 그리 관심이 없다. 애시당초 법을 먼저 어긴 건 원수들이기도 하고.(사실 편지만 전해 준 에드몽에게 무고죄를 씌운 것이니 충분한 범법 행위다. 빌포르도 자기 아버지와 관련된 일만 아니었으면 그냥 놓아주려 했을 정도. 물론 이 점에서 빌포르 역시 동죄이다.) 그리고 백작은 어디까지나 지상의 법이 아니라 하늘의 법을 따른다는 견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키고 있다.]는 관점을 보여주고 있고, 이 관점이 바로 기존의 복수극 서사에 흔히 제기되는 찝찝함, 즉 '복수라는 행위가 정당하냐'는 질문에 대한 이 작품의 대답이기도 하다. 애초에 이 작품에서 에드몽의 복수가 시원시원하게 이루어졌다는 독해 자체가 오독으로 여겨질 여지가 상당한 것이, 에드몽의 복수 중에서 정말 아무 갈등 없이 쿨하게 이뤄진 복수는 단 한 건도 없다. 페르낭에 대한 복수에서 [[메르세데스(몽테크리스토 백작)|메르세데스]]에 의해 자신의 복수 계획이 정당하지 못함을 추궁받은 백작은 결국 정당성을 잃으니 차라리 스스로 복수를 포기하겠다고 결심하는 데 이른 바 있고[* 그리고 자신이 한번 포기한 복수가 타인(메르세데스)의 개입에 의해 더욱 완전한 형태로 이루어짐으로써 백작은 신이 자신의 편에 서 있다(=신이 자신의 복수를 가호한다=자신의 복수가 신의 눈으로 보기에도 정당하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 후 이어진 [[제라르 드 빌포르]]에 대한 복수에서는 복수의 밑밥을 깔기 위해 백작이 충동질한 [[엘로이즈 드 빌포르]]가 백작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연쇄 살인극을 벌이면서 백작의 복수와는 상관없는 제3자나 무고한 어린아이까지 죽어나가고, 백작이 아들처럼 여기던 [[막시밀리앙 모렐]] 역시 발랑틴이 죽은 줄 알고 절망에 빠져 자살하려고 드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복수를 위해서 자신이 한 일이 너무 지나쳤다고 깨달은 백작이 '더 이상 신이 내 편에 있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고 갈등한 끝에 마지막 원수인 [[당글라르]]는 완전히 파멸시키지 않고 부정한 재산을 빼앗는 선에서 용서해 주게 되는 것.[* 애시당초 당글라르야말로 에드몽 당테스를 함정에 빠뜨린 주역이다. 페르낭은 약혼녀 메르세데스를 뺏아가긴 했지만 함정 자체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고(사실상 이쪽은 하이데의 원수를 대신 갚아주는 것이나 다름없고) 이는 빌포르도 복수의 대상이긴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함정 자체와는 큰 관계가 없다.] [[가스파르 카드루스]]에 대한 복수 같은 경우는 애초에 백작이 직접 가스파르를 파멸시킨 것이 아니라 그가 욕망에 빠져 양심을 버리면 빠지게 될 함정을 마련해 두고 자신의 욕심 때문에 스스로 파멸한 가스파르를 (과거 가스파르가 에드몽을 구해주지 않은 것처럼) 구해주지 않은 것뿐이니 더 말할 여지도 없다. 결국, 이 작품에서 백작의 복수는 외적(다른 인물과 난관)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먼치킨적인 것이지만 백작 자신의 내면에서 끊임없는 갈등을 거치며 이루어진 것이지, 덮어놓고 '아무 문제 없이 쿨하고 시원시원하게 복수 끝' 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 일본에서 번안극이 꽤 나왔고, 한국에서도 청일 전쟁 연간으로 한 번, [[김래성]]이 일제 연간으로 한 번 번안했다. 김래성판은 라디오극으로 한 번, 영화로 한 번, KBS 드라마로 한 번 각색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